0. 들어가며
한 여자가 중병에 걸려 가사상태에 빠졌다. 그녀가 사경을 헤매는 중에 어떤 신비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누구냐?"
"저는 쿠퍼 부인입니다. 이 도시 시장의 안사람이지요."
"나는 네 남편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여자는 잠깐 당황하더니 말했다.
"저는 제니와 피터의 엄마입니다."
그러나 목소리는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물었다.
"네가 누구의 엄마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선생입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너의 직업이 무어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매일 교회에 다녔고 남편을 도왔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네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네가 누구인지 물었다."
쿠퍼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얼마후 그녀는 이 꿈같은 상태에서 깨어났다.
1.'나'는 없다.
현재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을 현재라 부를 수 있을까? 현재란 망상이다.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 순간 당신은 현재에 있는가?
아니다.
당신이 의자에 앉은 감각, 혀끝에 닿는 커피의 씁쓸한 맛, 이 글을 읽는 그 순간 모두 이미 밀리세컨드 (천 분의 1초)전에 당신의 뇌 속에서 해석된 정보이다.
당신이 말하는 현재란 모두 과거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의하는 당신 즉, 자아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를 알아보기 위해 뇌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뇌는 크게 3단계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는 뇌에 기억을 저장하는 암호화 과정이다. 두 번째는 기억된 것을 머릿속에서 통합하는 과정이다. 세 번째는 회상 과정이다.
뇌는 당신이 접하는 것을 뇌는 암호화 하여 저장해서 가공해 놓았다가 당신이 비슷한 상황이나 물건을 만났을 때 다시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작용의 반복을 통해 뇌에서는 미엘린에 쌓인 축싹돌기를 거미줄처럼 뇌 속에 펼쳐놓는다.
2살부터 시작되는 이 과정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죽기 직전까지 반복된다.
2~3세 사이의 아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지각하며 3세 이상의 아이들은 자신의 과거 뿐만 아니라 가족의 과거도 자신의 삶에 포함한다. 3~5세 아이들은 이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하며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자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5~9세가 되면 이야기를 늘릴 수 있게 된다.
이때, 인간은 평생 하나의 불완전한 가이드를 가지게 되는데 바로 객관적인 진실보다 개인의 서사에 의해 평가하는 버릇을 들이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를 해석할 때 자기의 과거의 경험에 빗대어 '해석'한다.
그리고 삶에서 자신의 서사에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야기를 바꾸거나, 사건을 무시한다.
그러므로 뇌는 불완전한 인식자이며 편집자이다. 게다가 완벽주의 성향또한 가지고 있어서 기억의 빈 부분 부분을 임의로 메꾸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로 '이야기(story)'를 만든다.
이야기는 당신이 겪는 찰나의 순간을 유기적으로 묶어서 당신이 실제로 '존재' 한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서사가 마치 우리가 시간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위의 의 사진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그림이다. 애니메이션은 1초에 대부분 24fps(프레임)이 들어가는데 여기서 프레임이란 1장의 그림을 의미한다. 즉 1초당 24 fps는 1초에 24장의 그림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 개별적 사진들이 연속재생되는 순간 그것을 마치 하나의 유기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이는 오직 찰나의 순간을 살고 있을 뿐인 우리가 마치 과거가 존재하고 현재가 존재하고 미래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이를 우리는 '자아'라 부른다.
이제 우리는 맨 앞으로 다시 돌아가 쿠퍼 부인과 의문의 목소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신이 쿠퍼부인에게 한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딜레마다.
쿠퍼부인을 구성하는 부인으로서의 기억, 부모로서의 기억, 선생으로서의 기억, 독실한 신자로서의 기억을 모두 제거하면 쿠퍼부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부인,부모,선생,신자로서의 서사가 쿠퍼부인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쿠퍼부인은 모든 질문에 올바른 답을 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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