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뇌가 보여주는 환상
'보다.'
이 단어는 참 어려운 말이다. 특히 과학자들에게 말이다.
인간은 실제로 얼마나 볼까? 아마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얼마 없다. 직감적으로 시각이 있다면 누구나 볼 수 있지 않아?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인간은 살면서 거의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심지어 보는 것조차도 정확하지 않다.
먼저 범위를 살펴보자. 손가락 하나를 들어 중앙에서 눈 뒤쪽으로 서서히 움직여 보면 금방 우리의 시야에서 손가락이 사라진다. 이는 인간이 360도의 시각 중에 겨우 원뿔 정도의 (좌우 시야각이 180~210도, 상하 시야각이 120도 내외)를 본다. 는 뜻이다.
즉, 인간은 자기를 둘러 싼 공간의 절반만 본다.
반면, 대부분의 파충류나 포유류인 토끼, 코끼리 나 코뿔소는 360도 전 방위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뒤에서 오는 물체를 감지하고 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색깔은 어떨까? 인간이 볼 수 있는 색은 '가시광선'으로 분류된다. 색깔이란 빛의 파장인데, 인간은 400에서 700 nm까지의 범위를 감지한다. 그 범위는 전체 색깔의 겨우 47%에 불과하다. 심지어 특정 동물들과 달리 햇빛이 없으면 시각의 대부분을 상실한다.
공간과 마찬가지로 색도 인간은 전체 색깔의 절반만 본다.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물체는 어떨까? 인간은 변화하는 물체를 감지하는 것도 약하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변화맹을 겪는다. 변화맹이란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인간이 변화에 노출되면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겨우 볼 수 있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위의 그림은 각기 다른 그림이다. 이 중에서 몇 개가 다를까? (정답은 위의 주소로 확인하자)
게임 틀린그림찾기는 이러한 인간의 변화맹을 이용한 놀이다. 그러나 첫눈에 보았을 때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 바로 틀린 점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 변화맹 상태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은 시각으로 보는 능력이 굉장히 좋지 않다.
공간도, 색깔도, 변화도 전체의 반도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동물보다 못하게 진화하게 되었을까? 진화학자와 과학자들이 짐작하기로는 효율성을 위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뇌는 '꼭 필요한 것만 본다.'는 대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 이외의 잡다한 정보들은 모자이크 처리하여 우리의 주의력을 아낀다. 꼭 어떤 능력이 더해져야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부분을 퇴화시키는 것도 진화의 한 방법이다.
다만 이러한 결과로 명확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은 세상을 정확히 보지 못하며 그럴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2.가장 이성적인 것이 비이성적인 것이다.
앞선 이야기에서 인간의 시각적 능력이 형편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지능력은 어떨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동물의 다른 장점을 뛰어넘는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능력 또한 시각적 능력만큼이나 처참하다.
무려 인간의 뇌는 없는 사실을 꾸며낼 뿐 아니라 실제인 것처럼 경험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현실이 아닌 환상을 본다.'
이 이야기는 정신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모두 실제로 현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며 자신의 뇌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1800년대 무렵 독일의 물리학자인 헤르만 폰 헬름은 홀츠는 눈에서 뇌로 가는 데이터가 인간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데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뇌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고 생각했다. 이를 '무의식적인 추론'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위의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누구는 잔이라고 말할수도 있고 누구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이라고 대답할 수 도 있다. 위의 그림이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한 가지 그림에서 두 가지 모습을 본다. 이는 뇌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이 그림에는 숨겨진 정답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화면'이다.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 당신이 이 블로그를 보고 있는 동안 늘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하얀 잔'도 '두 사람의 얼굴'도 전부 당신이 위의 이미지를 보고 '재해석'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재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은 뇌에 전반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우리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로,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은 의식을 지배한다. 다만 우리는 스스로 의식이 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처럼 여긴다. 실제로 우리는 의식에 대해 의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뇌가 혼돈 속에서 질서와 이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계속 그럴듯한 거짓말 즉, '허구'를 만들기 때문이다.
뇌의 한쪽에서 정보를 받으면 다른쪽에서는 그것과 결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우리의 무의식이 행동을 만들면 우리의 의식은 그에 걸맞은 이야기를 만들어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는 이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을 위하여 무급봉사한다는 뜻이다.
1978년 마이클 가자니가와 조지프 드루는 뇌가 분리된 환자를 대상으로 좌반구에는 닭발사진을 우반구에
는 겨울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환자의 오른손은 닭이그려진 카드를 왼손은 눈삽이 그려진 카드를 골랐다. 왜 삽을 골랐냐는 질문에 환자는 대답했다. "그거야 닭장을 청소하려면 삽이 필요하니까요"
G부인의 사례를 보자. 사례의 G부인은 질병불감증을 겪고 있다. 질병불감증이란 환자가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다.
"눈을 감으셨나요?"
"네" (한쪽 눈은 떠 있지만 G부인은 스스로 두 눈을 감았다고 생각한다. )
"두눈 다요?"
"네"
나는 손가락 세 개를 들었다.
"제가 손가락 몇 개를 들고 있죠?"
"세 개요."
"눈을 감으셨다구요?"
"네"
".... 그럼 제가 손가락 몇 개를 들고 있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흥미로운 침묵이 이어졌다.
-193P-
이는 환자의 내면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열렬히 싸우다가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이성은 "눈을 감았어"라고 생각하고 무의식은 "눈을 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의식의 소리는 인지할 수 없기에 G부인은 "눈을 감았어" 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인간이 결정을 내리거나 무언가를 인지할 때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의식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3. 의식의 위상
고대부터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무지를 지적하며 "너 자신을 알라."라고 이야기했으며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는 모든 것을 의심하여 이러한 인간의 오류를 피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뇌과학과 신경과학은 말한다. '뇌에서 자유의지를 찾아볼 수 있는 기관은 없다.' '결국 의식은 무의식의 노예이다.' 그렇다면 의식은 대체 왜 존재할까? 그리고 의식은 정말 무의식보다 열등한 위치일 수밖에 없을까?
아니다.
의식은 뛰어난 지도자는 아니지만 뛰어난 리더이다.
의식은 무의식처럼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뒤에서 무의식을 다스린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의식은 독특한 역할을 한다. 바로 '인지적 유연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특정한 행동만을 반복할 뿐이다. 사자는 사냥을 코알라는 유칼리툽스 잎을 잘 따지만 사자가 유칼리툽스잎을 따거나 코알라가 사냥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의식을 통하여 새로운 기술을 익혀 수렵 채집 뿐만 아니라 항해와 우주여행도 할 수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스스로에게 가르치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스스로를 인지하는 '의식'이라는 내면의 스승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앞서 말했듯 인간은 스스로의 생각을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을 보고 거기서 한번 더 생각한다. "즉, 생각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메타인지'라 불리는 이 용어는 1970년대에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 H. Flavell)이 제시했다.
실제로 이러한 메타인지가 장기적인 성과, 집중력, 효율적인 학습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밣혀졌다. 이는 놀랍게도 후천적으로 개발가능한 능력이며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강화된다.
그래서 인간은 비록 세상을 절반보다 못하게 보지만 생각에 대해서 생각함으로서 보고, 해석하고, 더 좋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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