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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가?<39가지 길 이야기>

by 안테암블로 2023. 11. 5.

0. 들어가며

인류의 가장 오래된 발명은 무엇일까? 신석기? 뗀석기? 그것도 아니면 토기인가?
 
아니다. 바로 이다. 
 
인간뿐만 아니다. 모든 생물들은 길을 가지고 있다. 새들은 지구의 자기장을 통해서, 물고기는 특정해류를 통해서 저마다 길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은 인간을 만나기 위해서 길을 만든다는 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그야말로 길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다. 길에는 인간의 모든 것이 지나간다. 병기, 제도, 사상, 문화, 종교, 병사, 비행기, 배 등 말 그대로 모든 것이다.

역사를 그저 표면적으로 보면 땅의 변화로 생각하기 쉽고 지배권의 변화에만 집중하기 쉽다. 
 
그러나 땅의 가치는 바로 인간에게 달려있다 인간이 없는 땅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인간은 인간을 대하며 인간을 상대하고 인간을 상대로 전쟁하기 위에서 길을 이용하고 길을 만든다. 이 책 <39가지 길이 이야기>는 길 위에서 펼쳐진 역사의 과정을 서술하였다. 
 
 
1. 부 

바빌론에서 비롯된 이 민족 일파는 순식간에 당대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이 국가는 오늘날 사용되는 알파벳을 만든 것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어디일까? 
 
바로 상업의 나라 페니키아이다.
 
페니키아가 이토록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길 덕분이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이 땅에 집착하고 있을 때 페니키아인들은 길에 집착했다.

태생적으로 상인적 기질이 있던 이들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에 무역거점을 세우고  무역망을 넓혀갔다.
 
 
당대의 다른 나라의 군주들이 돈으로 땅을 산 것과 대조되게 페니키아인은 길에서 번 돈으로 새로운 길을 샀다. 이 선택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무역거점인 지중해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성서 에스겔서는 페니키아인의 부에 대해서 상아로 배를 만들고 은으로 길을 만들며 금으로 건물을 올렸다고 묘사할 정도였다. 
 
그러나 뒤이어 로마가 이 길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쟁을 하였고 카르타고 (페니키아)와 로마의 전쟁으로 인해 패배하며 페니키아는 쇠퇴하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페니키아인들은 자국군을 거의 두지 않고 군대를 사 올 정도로 부유했던 국가였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이 패착의 원인 중 하나였지만 기상천외일 정도로 부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면 오늘날에는 페니키아 같은 일은 없을까?
 
있다. 
 
바로 수에즈 운하다. 수에즈 운하는 제2의 지중해라 부를 정도로 현재까지도 치열하게 지분싸움을 하는 곳이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최단 루트이다.

운하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거리가 40%가 줄어들고 인도와 런던을 오가는 길은 24일 밖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운하 지도와&amp;amp;amp;amp;nbsp; NASA 의 Landsat8 위성이 촬영한 사진

 
처음에는 이집트와 프랑스가 운하의 지분을 절반씩 가지고 있었지만 이집트가 재정위기가 닥쳤을 때 80%가까이 사용하던 영국이 기회를 틈타 운하의 지분을 거의 다 사들였다. 1,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이집트에게로 소유권이 돌아올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인 21년 에는 에버 기븐호가 운하에서 좌초되어 길을 막게 되었고 고작 4일을 막았을 뿐이었지만 통행료만으로도 수백억 달러의 손실에다 민간 운항사의 경우 수천억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200여 척이 넘는 초대형 선박들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길은 한나라의 경제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2. 종교

이 세상 사람의 절반이 믿는 종교가 있다.
 
바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드루즈, 만다야 교, 바하이교, 아지드교, 사마리아인 신앙)이다. 이 종교들의 토대가 되는 성서에는 초기 유대민족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초기에 아브라함이 유목생활을 하는 도중에 신을 만나고  야곱이 신과 길 위에서 씨름하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가 길 위에서 신을 만나는 등 유대민족에게 길은 특별하다.
 
그러던 중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게 되면서  오랜 기간의 방랑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솔로몬 이후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왕국으로 갈라지게 되면서 북 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제국에 의해 멸망당했다.

남 유다 왕국 또한 위기를 맞이했는데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가 생겨나면서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이집트에 붙을지 신바빌로니아에 붙을지 선택해야만 했다.

유대인들은 이집트에 협력했고 그 이유로 신바빌로니아게 공격당하여 군인, 왕족, 대신, 장인들 1만여 명이 끌려가게 되었다. (1차 바빌론 유수)
 
신바빌로니아는 통치를 위해 시드기야를 허수아비왕으로 세웠지만 시드기야는 굴욕을 잊지 않고 이집트와 몰래 내통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금방 제압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586년에 다시 한번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끌려가게 되었다.(2차 바빌론 유수)
 
유대인들은 타지에서 볼모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이를 '신이 주신 시련'이라고 믿으며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하였고 신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하자 꿈에도 그리던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야말로 길 위에서 태어난 종교가 길 위에서 견고해지고 다시 길로 돌아오는 일련의 여정을 거친 것이다. 

그 뒤 그리스도교의 사제들이 동방과 유럽으로 기독교문화를 퍼트리고 이슬람교의 무함마드가 헤지라를 겪으며 이슬람교를 전파한 것 또한 모두 길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3. 정복
 
때로 길은 정복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정복전쟁이다.  
정복전쟁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아주 오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벗어난 호모사피엔스는 거주민이던 네안데르탈인을 압박하여 멸종시켰다. 

그 뒤 수만년간 세계로 퍼진 인류에게 기원전 356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대규모 정복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이었다. 그리스 국가 중 하나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는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염원을 이어 동방원정을 감행했다.

물론 처음에는 페르시아에 대한 보복전쟁이 명분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왕(다리우스 3세)을 쓰러트리는데서 멈추지 않고 인도의 인더스강을 건너기까지 하며 죽을 때까지 정복지를 늘렸다.
 
알렉산더대왕이 사망하고 그리스의 정복전쟁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한니발을 쓰러트리고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트라야누스 황제시대에 다시 활발하게 전쟁을 일으키며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연안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프랑스 시인 라퐁텐은 이 시대의 로마를 이 한 마디로 설명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의 아피아 가도https://ko.wikipedia.org/wiki/%EB%A1%9C%EB%A7%88%EC%9D%98_%EB%8F%84%EB%A1%9C

 
서양에서 이렇게 정복전쟁이 일어났다면 동양은 어땠을까? 동양도 마찬가지였다. 1206년 테무친은 몽골 초원에서 시작하여 정복전쟁을 일으켜 쿠빌라이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영토를 넓혀갔다.

1294년에 이르러서는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하고 이슬람과 동유럽까지 손에 넣으면서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다. 
테무친은 스스로를 칭기즈 칸(세계의 군주)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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