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예의 존재 이유
고대부터 명예는 곧 신용이었다.
옛사람들이 가문이나 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마땅한 정보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시절, 이름은 신뢰의 상징으로서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게 했다.
명망 높은 이름이나 가문을 대면 처음 보는 사람도 설득할 수 있었고, 이름과 맞바꿔 돈을 융통할 수도 있었다.
말 그대로 가문의 이름이란 현재의 신용등급과 같아서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
그래서 각 나라의 왕조나 제후들은 이름을 중요하게 여겼고 명예에 손상이 가는 일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
바로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사소한 이유로 전쟁을 시작하거나 같은 성씨를 가진 자들이 권력을 독점하여 계승하며 온갖 차별을 정당화 시켰다.
그러나 더 큰 문제점은 가문들 스스로 명예(신용)를 지키는 것과 개인에게 심리적 상처를 입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문에 속한 개인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 가문 전체에 대한 모욕이 되었고, 이는 불필요한 전쟁을 발생시켰다.
손자는 이 점에 대해서 날카롭게 관찰하여 전쟁에 나서는 장군에게 공명심을 버릴 것을 당부한다.
2.공명심의 폐해
1. 불필요한 피해를 만든다.
명예욕에 집착하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모른다.
전투가 치열하면 치열할 수록 그의 이름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선택지 (정치, 외교)를 두고 일부로 사지로 나선다. 당연히 현장에 있는 병사들은 리더의 어리석은 공명심 때문에 엄청난 수가 희생된다.
일례로 미국의 기업인 러버메이드는 포츈이 선정하는 '미국이 가장 칭송하는 회사' 1위였다. 그러나 금방 뉴웰에 인수되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 배경에는 역설적이게도 스탠리 골트라는 탁월한 리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성실한 폭군'으로 묘사하며 40사 분기 동안 수익을 폭발적으로 올렸다. 그러나 그가 회사를 떠난 뒤 1년 이 지나자 회사는 무너져 내렸다.
'뛰어난 리더'바로 이게 핵심이다.
생각해 보라 '탁월한 리더가 사라져 회사가 무너진 것 만큼 그의 이름을 높여주는 일은 없다.'
그는 지속가능한 회사를 남기는 것 보다 자신의 이름에 집착했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위험한 이유는 그가 사라지면 아무것도 아닌 조직이 된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손자가 말하듯 진정으로 싸움을 잘하는 자는 그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병법에서 (무지명무용공:無智名無勇功) 지혜로운 이름도 없고, 용맹스러운 공도 없다고 한 말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진정으로 뛰어난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이겨 (선선자 승어이승자야:善戰者 勝於易勝者也) 아무도 그 사람이 대단한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전단이다.
전단은 제나라의 장수로 연나라가 쳐들어 와서 70개 성을 함락시키고 오직 2개의 성만 남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했다.
그때 대부들의 추천으로 전단은 즉묵성의 장군이 되었다. 마침 연나라 사람들은 제나라 포로들의 코를 자르고 무덤을 파헤치기까지 하여 제나라 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 상황에서 전단은 어떻게 했을까?
무려 그는 수비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성을 연나라에 내주었다.
이 때 제나라 백성들은 전단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느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새로 부임한 장수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성을 내주었을뿐더러 무려 2만 냥의 거금을 불구대천의 원수 연나라의 장수에게 보내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전단은 비밀리에 계책을 꾸미고 있었다. 전단은 성의 사람들을 거짓항복하게 한 후 빠져나와 소 1000마리 장사5000명을 성 부근에 배치하고 성에는 미리 구멍을 뚫었다. 연나라가 성을 정복하고 밤이 되자 그는 소에 불을 붙여 성 내에 들어가 날뛰게 만들었다.
그 뒤로는 5000명의 장사들이 북을 두들기며 위협하자 당황한 연나라 병사들은 쇠뿔에 받혀 죽었다.
만약 전단이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전략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因形而錯勝於衆, 衆不能知, 人皆知我所以勝之形, 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
인형이조승어중, 중불능지, 인개지아소이승지형, 이 막 지오소이제승지형.
적의 진형을 원인으로 하여 승리를 하여도 병사들은 어떻게 이겼는지 알지 못하며 장교들이라 하더라도 개략적으로 아군이 승리한 것은 알지만, 장군인 내가 어떻게 그 형세를 통제하여 승리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은 생명과 이름을 맞바꾸고 명예를 천시하는 사람은 이름과 생명을 맞바꾼다.
2.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명예욕이 강하면 시대정신을 무시한다. 그래서 한번 성공한 방법에 집착하게 된다. 손자는 이를 경계하며 말한다.
故其戰勝不復, 而應形於無窮.
고기전승불부, 이응형 어무궁.
그러므로 한번 전쟁에서 승리한 방법은 다시 사용하면 안 된다. 무궁한 형세의 변화를 끝없이 응용하여야 한다.
한번 쓴 계책은 두 번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왜 장수가 한번 쓴 방법을 고수할까? 그의 자아가 강하기 때문이다.
명예욕은 수치심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명예욕이 강한 장수는 아랫사람의 말을 자신에 대한 비난과 명령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전략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전략과 전통을 고수한다.
스탈린은 히틀러가 영국을 공격한 뒤 소련을 공격할 것이라 믿었다. 그때 소련의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는 일본에서 일하며 일본정부에서 히틀러가 소련을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규모와 계획까지 문서에 담아 전달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의 부계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했고 결국 1941년 나치는 모스크바를 점령하기 시작하며 200만 명의 소련군이 전멸하고 말았다.
그의 의심 많고 편집증적인 성격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던 소련에서 높은 위치로 올려주었지만 대신 현실감각을 흐려놓았다.
그렇다면 명예욕을 버리면 어떨까?
삼국시대에 유비는 관우와 장비의 죽음으로 분노하여 무리하게 전쟁을 감행하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결국 기산전투에서 겨우 2000명의 수비대로 사마의의 15만 군대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 제갈량은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성루에서 거문고를 연주하였다.
사마의가 성문 앞에 도착하니 제갈량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보고는 의심이 생겼다. 자신이 아는 제갈량은 늘 매사에 신중하고 기이한 계책을 내는 자였다.
곧 사마의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생겼고 제갈공명이 자신을 사지로 끌어들이는 것이라 생각하여 철수하였다.
제갈공명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평생 의지하던 계략과 계책 같은 방법뿐만 아니라 신중한 면모라는 자아상까지 모두 내려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我不欲戰, 雖劃地而守之, 敵不得與我戰者, 乖其所之也.
아불욕 전, 수획지이수지, 적부득여아전자, 괴기소지야.
아군이 전투를 하지 않을 욕심이면 비록 아무 지형에나 구획을 긋고 수비하더라도, 아군에게 전투를 유도할 수 없는 이유는 적이 공격할 장소를 어구려 뜨려 방향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3. 신뢰를 저버린다.
공명심이 강한 사람은 매사에 자기가 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고 여기며, 권한이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면 화를 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항우이다. 항우는 범증이라는 희대의 책사를 곁에 두었는데 그의 실력이 워낙 탁월하여 유방은 골머리를 앓았다.
그때 진평이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어 소문을 퍼뜨렸다.
내용인 즉, 항우가 진평에게 땅을 주지 않아 그에 화난 범증이 한나라와 한 패가 되어 왕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진 후로 항우는 범증을 믿지 않게 되었다. 평생을 헌신한 항우에게 버림받자 범증은 화병이 도져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天下事大定矣 君王自爲之 願賜骸骨歸卒伍
천하의 대세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뒷일은 대왕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원컨대 (대왕께 바친 제 해골을 구걸하오니) 제 해골을 돌려주시어 졸오로 돌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그 뒤 화병과 등창으로 범증이 사망하고 만다.
반증이 사라진 후 항우는 유방에게 계속 밀려 자신의 애첩과 함께 자살하고 만다. 자신의 손을 자기가 자른 격이다.
항우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평소에 항우가 하는 행동을 잘 관찰하면 알 수 있다.
항우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패왕이었지만 자신이 얻은 공을 나누는데 인색했다. 그래서 얻은 재물을 자신과 친척에게 만돌린려고 했고 병사들은 항우의 아래에서 일해도 제 몫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그의 라이벌인 유방에게 붙었다.
그중에서는 일개 병사뿐 아니라 항우의 책사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진평은 정확하게 분석하여 유방에게 말했다.
항왕의 사람됨은 사람을 공경하고 아껴 선비들 중에서 청렴하고 지조 있고 예를 좋아하는 자들 대부분이 그에게로 귀순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을 논해 봉읍을 내려야 할 때 오히려 주저해 선비들은 그에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진평-
그 뒤 진평은 항우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진평의 말을 사실이었고 결국 유방은 중국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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