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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어떻게 문명을 발전시켰나? <전쟁이 발명한 과학기술의 역사>

by 안테암블로 2023. 9. 24.

0. 들어가며 
 
과학기술이 가장 발전할 때는 크게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과학자들에게 자유가 주어질 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다.

전쟁이 왜 기술을 발전시키는지 얼핏 이해가 안 가는 게 당연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 무조건적인 파괴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은 다른 측면도 있다. 
 
평화로울 때 학자들은 자유롭게 이론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중 대부분은 예산과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이론의 상태에서 가설의 상태에서 오랫동안 머무른다.

그러다 나라에 전쟁이 발생하게 되면 국가에서는 이론을 현실화하기 위해 온갖 자원과 예산을 기술개발에 쏟아붇는다. 그러면 가설상태에 있던 기상천외한 온갖 과학기술들이 현실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야말로 각 국가는 고대의 전차, 등자, 화약, 인터넷, 마약, 바퀴, 생명체의 개량에 이르기 까지 그야말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게 된다. 

처음에는 파괴적인 이유로 발전되었던 기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민간화 되기 시작하고 문명의 근간으로 변한다. 
전차는 마차로, 등자는 상인들의 운송수단으로, 화약은 에너지로, 마약은 약으로 원자폭탄은 원자력발전소로 바뀐다. 
 
이  책 <전쟁이 발명한 과학기술의 역사>는 이러한 내용들을 기술들의 발전과정과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간단하고 쉬운 문체로 저술했다. 
 
 
 
1.
 
1. 코카

코카 나무https://ko.wikipedia.org/wiki/%EC%BD%94%EC%B9%B4%EB%82%98%EB%AC%B4

옛날부터 잉카인은 코카나무의 잎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들은 전쟁을 할 때 주술을 할 때 길을 걸을 때 수술을 할 때 미라를 만들어 시체를 보존할 때 모두 코카 잎에 의지했다. 이 덕에 잉카인들은 어떤 문명보다 앞서 외과수술을 시도할 수 있었다. 
 
코카잎은 섭취하면 기분이 황홀해지며 고통에 무뎌지는 마약류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직접적인 구매나 판매가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까지도 의사들이 처방하는 약에 코카인 성분이 들어있는 것들도 있다. 즉, 땔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그러면 코카잎은 어떻게 유행하게 되었을까?
 
코카잎은 1855년 독일의 프리드리히 가예트케에 의해  코카잎의 핵심마약성분인 코카인을 추출하게 된다.
그리고 1863년 코카인을 넣은 최초의 음료수인 마리아니 와인이 등장했다. 
 

 
당시 마리아니와인을 만든 안젤로 마리아니는 이 와인을 피로해소에 뛰어난 자양강장제로 판매하였고 
수많은 셀럽들이 이 와인을 복용하며 극찬했다. 

그중 에는 영국의 여왕 빅토리아, 왕세자 에드워드 7세, 스웨덴 국왕, 작가 H.G 웰스, 쥘 베른과 종교인인 교황 13세,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도 있었다.  
 
그러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과 포탄이 주요 무기였기에 거점에 참호를 파고 싸우는 참호전이었다. 이 참호전의 가장 잔혹한 점은 순식간에 대량살상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기관총, 포탄에 맞으면 몸이 산산조각 나기 일쑤였고 포탄의 소리에 고막이 찢어지거나 파동으로 인해 피부가 뜯겨나가는 등 끔찍한 참상의 도가니였다. 
음식은 삶은 무를 이용한 통조림이었는데 지독히도 맛이 없었다. 

1차 세계대전 병사들 사진 &lt;출처&gt;위키피디아

그래서 병사들은 마음의 도피처로 코카인을 복용하게 되었고 코카인 사용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코카인을 사용하자 코카인은 민간인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이 되었다. 
 
2. 아편

양귀비 &lt;출처&gt; 나무위키

 
아편은 양귀비 덜 익은 열매를 긁은 뒤 나온 즙을 햇빛에 말려 생긴 가루를 뭉친 덩어리이다.
아편은 사용할 시 환각과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마약이다. 
 
그 기원은 수메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들은 양귀비를 '기쁨의 풀(Hul Gil)'이라 부르며 신을 섬기는 제사 때 사용했다. 

그러다 이집트인이 재배하게 되었고 무역을 많이 하는 이집트답게 그리스, 카르타고, 이슬람 제국, 페르시아와 유럽 등 여러 나라로 전파했다. 
양귀비를 얻은 유럽은 4000년간 이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며 생리통용 진통제, 설사 등으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1620년 담뱃대를 이용한 아편 흡입방법을 개발하고 1729년 청나라가 아편을 금지할 때까지 유행했다. 

그러나 영국과 청나라의 무역에서 영국이 가진 은이 청나라로 흘러들어 가게 되고 영국은 무역에 적자를 보이게 되자 은 대신 아편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청나라에서는 아편은 값이 비싸 부유층만 즐길 수 있는 전유물이었지만 영국에서 수입한 아편으로 가격이 낮아지기 시작하자 나라 안에는 아편중독자들이 폭증했다. 
 
1836년에는 중독자가 1250만 명이 넘자 청나라에서는 임칙서를 통해 영국에서 아편 2만 283 상자를 압수하여 바다에 던져버렸고 분노한 영국은 조지 엘리엇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청나라를 공격, 청나라는 몇 번의 전쟁 끝에 난징조약을 맺게 되었다. 
 
그 뒤 아편이 제약 없이 수입되며 4000만 명이 넘는 아편 중독자가 생겼다. 
 
 
2. 병기
 
 1. 화약

당 고조 이연

도교의 사제들인 도사들은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영원에 가깝게 살 수 있는 영생약(단약)의 개발에 몰두했다.

당나라 고조 이연은 스스로를 노자의 후예라고 부를 만큼 도교를 숭상했고 이런 당나라의 지원에 힘입어 도교는 적극적인 후원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염초, 유황, 목탄으로 화약을 만들게 되었다. 
 
화약은 만들어지고 200년간 중국에서 폭죽놀이에 이용되다 10세기 송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무기로 사용되었다. 

송나라는 화창(화염방사기의 원형), 화전(로켓의 원형)을 이용하여 금나라에 대응하여 왕조의 수명을 늘렸으며 그 뒤 몽골족이 원나라를 세운 뒤 화약기술을 연구하여 청동대포를 만들었다. (1332년)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양에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대신 서양에서는 화약을 이용한 무기개발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오스만 제국이 무려 천년을 버틴  불리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는데 대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비밀통로를 이용한 기습이 덕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서양에서는 앞다투어 대포를 개량하기 시작했다. 
 
그중 나폴레옹은 기동력을 높은 대포를 만들어내었고 영국의 포병장교 H. 지래프늘은 폭발하는 포탄을 개발하면서 발전시켰다. 
 
2. 원자폭탄

맨해튼 프로젝트를 다룬 영화 &lt;오펜하이머&gt; 2023년작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미국이 1942년 '맨해튼 계획'을 통해 핵분열 에너지를 군사무기로 만드는 계획에 착수했다. 

원자폭탄은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 239를 이용한 무기였다. 1942년 엔리코 페르미는 '시카고 파일 1호'를 통해 핵분열 연쇄반응을 제어하였고 미국은 20억 달러를 투입해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초의 원자폭탄 '뚱보(Fat man)'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원자폭탄 팻맨

대망의 7월 16일, 멕시코에서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실행한 최초의 원자폭탄실험이 실시되었다.
 
폭탄이 터지자 잠시간의 정적이 있었고 곧 폭음, 섬광, 700미터까지 높이 솟아오른 버섯구름이 생기며 주변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켰다. 땅의 모래는 유리가 되어있었다. 이는 다이너마이트 200만 톤이 폭발한 파괴력이었다. 

원자폭탄의 경험자인 나카자와 케이지가 그린 만화 &lt;맨발의 겐&gt;

1945년 8월 6일 리틀보이가 일본의 히로시마에 타격하자 34만 명 중 6만 6000명이 죽고 7만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도시의 70%가 파괴되었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4만 명이 죽고 2만 6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결국 일본이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마며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3. 통신
 
1. 컴퓨터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은 독일 해군이 에니그마 암호기로 아군에게 지령을 전달한다는 사시을 알게 되었다. 24해로 이루어진 알파뱃과 숫자의 조합은 복잡하기 그지없었고 영국의 MI6 해독하는데 2년이 걸릴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방법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당대에 수학, 전기공학에 능란 학자들을 런던에 모았다. 
 
그때 가장 눈비시계 활약한 이가 바로 앨런 튜링이었다. 그는 한 시간에 5858개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으며 1943년에는 콜로서스 1호를 발명하고 1년 뒤에는 연산속도가 5배가 더 빠른 콜로서스 2호를 만들어내었다. 

영국이 이렇게 까지 한 이유는 독일의 U보트 잠수함이 영국의 보급선을 공격하여 무력화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앨런 튜링이 만들어낸 암호해독기로 영국은 역습을 가할 수 있었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앤런 튜링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lt;이미테이션 게임&gt;

그러나 불행하게도 앨런 튜링 본인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데 전쟁이 끝나고 그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퍼지자 그는 영웅에서 범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부는 그에게 감옥에 수감될지 아니면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을지 선택하라고 강요했는다. 결국, 감옥이 싫었던 앨런 튜링은 호르몬 주사를 선택했다. 

지속적인 호르몬 주사로 젖가슴이 튀어나오는 등 굴욕감을 느낀 튜링은 스스로를 비관하다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자살하고 말았다. 우리가 보는 애플사의 로고는 바로 컴퓨터의 시초 격인 앨런 튜링이 먹은 사과를 본 따 만들었다고 한다. 
 
 2. 인터넷 

&lt;출처:DARPA&gt;

미국 국방부는 1946년 9월 2일 고등연구 계획국에서 캘리포니아 대학과 협력하여 군사용 컴퓨터 네트워크 개발에 열을 올렸다.

미국 국방부는 기존의 컴퓨터가 파괴되면 정보가 소실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정보를 옮기는 방법을 고안했고 그렇게 최초의 인터넷 아르파넷(ARPANET)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스탠퍼트대학이 10월 29일에 케이블을 이용한 정보교환에 성공했고 미국의 동부와 서부가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 1973년에는 미국과 영국이 연결되는 등 케이블은 점점 늘어났다. 

인터넷의 가능성에 눈을 뜬 미국은 인터넷을 민간에 내놓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어 1983년에 민간화를 했다. 
그 뒤 넷스케이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인터넷 기업들이 생겨나며 삶을 풍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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