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여호와 께서 유다 지파와 함께 하셨으므로 그들은 산간 지대를 점령하였으나
철 전차를 소유한 골짜기 주민들은 쫓아내지 못하였다.
-사사기 1장 19절-
최근 한국에서 상온 초전도체이야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이 놀라운 발견에 대해 혹자들은 '초전도체가 발견되었어, 그래서 뭐? 그게 밥 먹여주나?'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물질의 발견과 발명은 개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어떤 물질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정세의 판도를 크게 뒤집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에 이르러서도 각나라는 신물질의 개발에 힘쓰고 있다.
1. 생존과 물질
①흑요석
아주 먼 고대 우리의 선조들은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쏘다니며 사냥과 채집을 통해 살아가는 수렵채집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은 모든 생명체의 정점에 서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흑요석의 발견 이었다. 화산에서 생성되는 자연유리와 불순물이 섞인 흑요석은 높은 절삭력을 지녀 동물의 가죽을 자르거나 뚫기에 적합했다.
영리한 선조들은 나무에다 흑요석을 끈적거리는 역청이나 식물의 끈으로 고정시켜 화살과 창으로 가공했다. 이 무기들은 인간은 높은 원거리 살상력을 지녔다. 아무리 사납고 거대한 짐승이라고 멀리서 공격하는 인간의 화살이나 창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현재 존재하는 동물중 가장 강한 동물 코끼리와 고래가 인간에게 사냥당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니, 가히 흑요석은 인간을 이 땅의 지배자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②점토
시간이 지나 기원전 7000년 경 막강한 위력의 흑요석 무기를 든 채 여러 대륙에 퍼져나가며 땅을 지배하던 선조들은 우연히 바닥에서 물컹거리면서도 점성이 있는 흙을 발견했다.
바로 점토였다. 점토는 열을 가하면 단단해지게 되는데 선조들은 그릇의 형태로 점토를 만들어 가공하여 토기를 만들었다. 토기는 음식을 보관할 수 있게 했다.
인간이 음식을 보관하기 시작하면서 겨울에 사냥을 하지 못해 죽어나가는 인류의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또 음식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음식이 충분하다면 이전처럼 목숨을 걸고 사냥이나 채집이 잘 사냥을 떠날 필요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벼나 밀을 재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어 선조들은 땅을 떠나지 않고 거주하려는 거주민이 늘어났다.
집이 생기면서 집을 지키는 자경단이 생겼고 훗날 군대의 기원이 되었다.
2.번영과 물질
①점토
평판 위에 쓰듯 글씨를 썼으니 이제껏 점토판에 쓴 글씨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그리되었도다.
-엔메르카르와 아라타의 왕들-
수렵채집민에서 거주민이 된 선조들은 식량이 풍족할 때는 토기에 다량의 음식을 저장해 놓았다. 그러다 보니 먹고도 남는 날이 많아졌다. 당시에는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음식은 금방 썩었다. 여기서 한 수렵채집민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토기의 음식을 다른 지역의 음식과 맞바꿔 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웃과 맞바꾸다가 점점 넒어져 강 너머 바다너머의 사람들과도 거래를 텄다. 기원전 4000년 수메르인은 거래를 발전시켜 원거리 무역을 시도했다. 그런데 원거리 무역을 하다 보니 자신의 거래를 깜박하는 경우가 생겼고 원거리 무역의 기록을 기록하기 위해 점토판에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문자가 발명되었다.(쇄기문자)
또한 무역으로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하자 시간이 남기 시작했고 농경민중 일부는 기술에 관심을 가져 최초의 전문가 집단인 장인이 탄생했다. 점토는 그릇뿐만 아니라 집, 문자, 무역, 장인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②구리
블레셋 진영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싸움을 걸려고 나섰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 하고도 한뼘이나 더 되었다.
머리에는 놋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몸에는 갑옷을 입었는데, 갑옷의 무게는 놋 오천세겔이나 되었다.
-사무엘상 17장 4~7절 中-
기원전 4000년 이란에서는 구리제련을 성공시켰다. 당시 구리라는 존재를 알고 있어도 어떻게 얻는지 전무한 상태였다. 그러던 누군가 가마에 공작석을 떨어트렸는데 그게 열을 받으며 구리가 되었다. 공작석에서 구리를 얻는 법을 알게 되고 시간이 조금 지나 구리를 찾는 사람들은 오로지 직관과 단서만으로 구리를 찾아내는 방법을 공유했다. (향나무 아래, 토지의 색깔, 물의 맛등)
어쨌거나 장인들은 얻어낸 구리를 진흙의 틀속에 넣어 식혔다. 진흙만 떼어내는 제련술인 탈날주조법을 사용해 다양한 무기와 농기구를 만들어내었다.
또한 구리와 주석을 일정비율로 섞으면 합금인 청동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청동칼과 청동농기구는 쉽게 부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
3.향락과 물질
①금
보통의 철이나 구리는 시간이 지나면 색이 까맣게 변했다. (산화현상) 그러나 금속 중에는 그 빛을 잃지 않는 금속이 있었으니 바로 금이었다. 영원성을 상징하는 금은 당대의 왕과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금은 당시 금은 석영광맥에서 찾거나 땅에서 줍거나 물가에 떠내려 오는 사금을 모아 금덩어리로 주조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금은 매우 물러서 가공하기 쉬워 장인들이 예술혼을 불타오르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지금도 금으로 된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이 발굴된다.
②은
은은 아주옛날부터 건강을 지켜주는 금속으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금은 향균작용을 가진 금속이었고 금보다 은이 더 높은 값을 받았다.
은은 회취법이라는 기술을 사용했는데 연광석을 담아 가열하여 은을 추출하거나 로마에서는 금과 은을 가루로 만든 뒤 수은을 섞은 뒤 수은을 증발시켜 금과 은만 남기는 아말감법
구리와 금은 납을 녹인 뒤 구리만 뽑아내는 회취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③유리
유리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그 기원은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다. 이집트는 사제들이 제사를 하기 전에 탄산소다로 정화의식의 목욕을 했는데 이집트를 관통하는 나일강이 햇빛에 마르면 탄산나트율과, 중탄산나트륨이 나오게 된다.
이것을 실리카라 부르는 모래에 넣고 가열하면, 본래 1713도에서 가열해야 얻을 수 있는 유리는 더 낮은 온도에서 추출할 수 있게 되었다. 유리제품은 토기나 도자기와 다르게 유약을 바르지 않아 냄새도 나지 않았고 제조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도 없었으며 투명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왕족과 귀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4.전쟁과 물질
①철
아수르 신이 주신 철제 단검에 힘입어 이 나라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노라
-아시리아의 왕-
기원전 2000년이 되기 전에는 철은 금보다 더 늦게 사용되었다. 당시에 철값은 금값보다 높았는데 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련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은 이미 산화가 진행되어 빨갛게 변한 철 적철석에서 얻을 수 있었는데 철을 추출하려면 가마의 온도가 1573도까지 도달해야 했다.
히타이트는 불완전한 철 제련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양산해내지는 못했고
제대로 양산한 나라는 아시리아 였다. 철무기를 지닌 나라는 청동무기를 지닌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철기무기의 제련법은 비밀에 부쳐졌으며 장인의 가족들은 일종의 인질로 취급되었다.
②화약
그것은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를 냈고 그 모습은 마치 불을 뿜는 커다란 용이 하늘을 나는 듯했으며,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워낙 밝아서 진지에 있던 우리는 사방을 대낮같이 훤히 볼 수 있었다.
-드 주앵빌-
중국은 처음으로 화약을 만들어내었다. 처음에는 불꽃놀이용으로 만들었지만 잦은 전쟁으로 인해 919년 중국 송나라에서는 이를 무기화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들은 오직 감과 수천만번의 실험으로 최적의 화약비율을 찾아내었고 (초석 75% 황 12.5% 숯 12.5%) 바로 폭탄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계량하여 거기에 더해 휘발성 액체 담근 심지에 불을 붙여 상용화가 가능한 폭탄을 만들거나 화약통에 철조각을 넣어 비처럼 칼날을 쏟아내는 폭탄, 최초의 로켓등을 만들어내었다. 폭탄의 제조법은 실크로드를 타고 중동과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고 대포가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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