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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쓰여지는가 새겨지는가? <역사란 무엇인가?>

by 안테암블로 2024. 11. 24.

 

 

0. 들어가며 


가장 오래된 신화인 수메르 신화에는 운명의 서판(Tablet of Destiny)이라는 물건이 등장한다.

 

대양의 여신인 티아마트가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신 에아(ea)에게 복수하고자 그 서판을 킹구(Kingu)에게 주었다. 이 운명의 서판에는 신들을 포함한 만물의 운명(과거와 미래)이 새겨져있어 그야말로 우주를 지배하는 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인간도 이와 비슷한 것을 만든다. 
 
바로 '역사'이다.
 
선사인들의 암각벽화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컴퓨터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고 390만 년 동안 인간은 역사를 써왔다. 그러나 생각하는 존재로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가 역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또한, 역사란 무엇이며 인류는 역사를 통해 운명의 서판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1.새겨지는 역사,  쓰여지는 역사 


역사란 무엇일까?
 
한 때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견이 팽배했다. 하나는 역사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사실들의 기록으로 보는 의견(마치 우주의 절대적 섭리처럼 새겨져 있다는 의견)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란 상대적이 주관적인 기록(인간들에 의해서 쓰여지는 인간의 산물)이라는 의견이다.
 
먼저 전자를 살펴보자 이들의 의견은 저널리스트인 c.p스콧이 말한 대로  '사실은 신성하며, 의견은 자유롭다.'로 대표된다. 그들은 내면에 역사라는 운명의 서판의 존재를 믿는다. (크게 말해서는 결정론을 따르며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들은 명백한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한 예지를 위해서는 사건에 사견이 담길 수 없다.사견은 미래예측에 방해되는 불필요한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믿는 이들을 편의상 '사실신앙주의자' 라고 부르겠다. 이들은 특히 19세기에 범람했다.  자신들의 신전속에 경건한 성서를 마주하듯이 역사를 대했으며 '사실'들을 수집했다. 법령들, 조약, 보고서, 통신문, 일기 등이 신전에 쌓였다. 이들에게 역사는 정확한 묘사만이 관건이었다. 
 
이들에게는 역사란 '신의 흔적'이거나 아니면 '사실'이 '신' 그자체 인 경우였다. 이러한 풍조는 허구인 소설책이 대중에게 사랑받듯이 사실만이 기록된 서류는 학자와 위정자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원하는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역사기록에 성공했을까?
 
로마의 위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에서의 일을 기록한 책 <갈리아 전기>에서는 모두 3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나는 이러했다가 아니라 카이사르는 이러했다 로 저술되어 있다.) 저자인 카이사르가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표현하려는 노력이었다. 9년간의 그 세세한 전투과정의 묘사는 당대와 현대인 모두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갈리아 전기 속을 엿보면 카이사르는 스스로를 넌지시 황제로 여기고 있으며 은근한 칭찬도 숨기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의 묘사에는 갈리아인의 신과 문화들에 대한 혐오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현대에는 어땠을까?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바이마르 공화국의 외무장관이었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 1929년 사망했을 때 300상자 분량의 서류가 남아있었다. 그의 서류는 1945년에 미국과 영국의 수중에 들어갔고 사진을 찍어 런던과 워싱턴의 국립문서 보관소에 배치하여 학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서류들은 유럽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들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 기록들에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은 당사자인 '슈트르제만' 이 최대 수혜자로 그려지고 있다. 당연히 그 반대파인 치체린의 생각은 알 수 없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를 알 수 있다. 역사에 있어서 사실숭배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저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시대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러 사실들의 대조 및 비교를 통해 역사에 진정으로 객관성을 이끌어내면 된다.' 
 
그러려면 현대 유럽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슈트르만 뿐만 아니라 치체린의 기록들도 살펴보아야 한다. 갈리아 전쟁에 대해서 객관성을 가지려면 카이사르뿐만 아니라 갈리아인의 저작들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대조를 통해 객관성을 가지려고 해도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역사가의 생각속에서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역사란 역사가의 손에 쓰여진다.
 
우리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든 역사는 최종적으로 역사가 스스로 내면의 동의를 통해 순서와 어떤 사건을 무대에 올릴지 결정하게 된다. 영국의 역사가 배러클러프가 말했듯'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비록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도, 엄격히 말하면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널리 승인된 일련의 판단들이다.'
 
그리고 인간의 손을 거치는 이상 그것은 완벽히 사실적이지도 않으며 절대적이지도 않다. 역사에서 절대적인 사실들은 쓰여질 수가 없다. 
 
2. 역사란 상호작용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기록이라는 말인가?
 
그것 또한 옳지 않다. 아니 현명한 독자들이라면 아마  눈치챘겠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질문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이유는 역사는 운명의 서판으로 대표되는 결정론의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이 결정되어 있으며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손에 쓰이며 그것은 불완전하다. 그렇다고 역사가 완전히 불완전하며 허구인 것도 아니다. 결국 역사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사실들의 기록과  상대적이 주관적인 기록 그 사이의 무언가다.
 
역사란 완벽한 절대성을 지니지도 완벽한 상대성을 가지지도 않는다. 책의 저자 E.H카는 다음과 같이 역사를 정의 내렸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비록 역사가 사실숭배주의자들의 생각처럼 객관적이지는 않고 그 실체가 역사가의 임의에 의해 이리저리 끼워 맞춘 퍼즐조각에 불과하더라도 그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평가하고 그곳에서 현대에 도움이 될만한 일반론을 이끌어낸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 있다.

우리는 역사란 기록이 아니라 대화이며 역사가란 기록하는 자가 아니라 평가하는 자임을 알 수 있다. 
 
 
3.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는 방법


그렇다면 위와 같은 문제들을 마주한 우리들은 어떻게 역사를 보아야 할까? 다음과 같은 지침들을 머릿속에 세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역사를 공부하기 전에 역사가를 공부하라. 
 

우리는 자신의 시대의 부당한 영향에서도, 환경의 억압과
우리가 숨 쉬는 대기의 압력에서도 우리를 구제해야 한다.
-액턴-

역사를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역사가 는 그 살고 있는 시대에 종속된 사람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점은 스스로와 역사가가 역사의 일부임을 이해고 자신이 역사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 이해로부터 비로소 사회적,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분별력(judicious)을 갖추게 된다.
 
②한 명의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 시대의 위인이란 자기 시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고, 그 의지가 무엇인지를 그 시대에 전달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실현한다.
-헤겔-

역사에서 사실이란 사회 속에 있는 개인 간의 상호작용과 결과를 자아내는 사회적인 힘들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한 위인이나 악인이 그 집단을 대표한다고 하여서 그들이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그들이 위인 혹은 악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을 추종한 대중 덕분이다. 만약 대중들이 그들을 추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히틀러와 윈스턴 처칠은 사회의 현상일 뿐이지 궁극적인 원인이나 결과가 될 수 없다. 
 
 
③역사는 미래를 예언할 수 없다. 
 

같은 강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 번성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역사가는 사실들을 추출하고 엮어내어 그 교훈을 다른 일련의 사건들에 적용하려 한다 그러한 일반화들은 미래의 행동들에 유용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예언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한번 일어난 사건은 유일한 것이며 거기에 우연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추어 보아 한 학교에서 전염병이 퍼질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옆자리의 민수나 철구가 전염병에 걸릴 것이라고는 예언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추정할 수는 있지만 체 게바라가 이끌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다. 인간은 가장 복잡한 자연의 존재물이며 그 복잡함을 예측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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