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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by 안테암블로 2023. 2. 12.


1. 수메르의 바빌론 신앙

인간은 신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에누마 엘리시>-

1. 창세

태초의 신이자 바다의 신인 남무는 하늘의 신 '안'과 대지의 여신'키'를 낳았고 안과 키는 그 밖의 신들을 낳았다.

압수와 티마이트는 안(아누)과 엔키(에아)를 낳았는데 이 둘이 시끄럽게 하자 부모인 압수가 자식인 안과 엔키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엔키는 이 사실을 알아채고 엔키가 먼저 압수를 죽인다.

이에 분노한 티마이트가 용, 뱀, 사자, 전갈등의 악한 생명체를 만들어 엔키를 죽이려 하지만 엔키의 아들 '마루두크'가 티마이트를 죽인다.

신들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 신들은 노동의 고단함을 호소했고 신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서 인간을 만들었다.

2. 영웅

길가메시 조각상(루브르 박물관)

우르의 왕이자 신과 인간의 피를 둘 다 지닌 괴력의 소유자' 길가메시'는 오만한 성품으로 신들을 모욕했다.

그런 길가메시에게 분노한 신들은 길가메시를 죽이기 위해 최초의 인조인간 '엔키두'를 보내 죽이려고 한다.
엔키두와 길가메시는 서로 힘이 거의 대등하여 승부가 나지 않았고 오랜 기간 싸우던 중 둘 사이에서는 우정이 생겨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길가메시는 여신 이슈타르의 고백을 거절하고 분노한 이슈타르는 성스러운 황소를 보내서 우르를 괴롭혔다. 황소에 의해 우르의 백성이 죽어나가자 길가메시는 황소를 죽이려 했다.

황소에 고전하던 길가메시는 친구 엔키두와의 협력으로 겨우 황소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신들은 길가메시를 죽이지 않고 자신들의 황소를 죽인 엔키두에게 분노하여 엔키두를 죽였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시체를 보고 슬픔에 빠져 엔키두의 몸에 구더기가 생길 때까지 안고 있다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길가메시는 우르를 등지고 불로불사가 되는 여행을 떠난다.

고생을 거듭한 끝에 불사신 우트나파쉬딤을 만나 불로불사의 풀을 얻지만 목욕을 하던 중 뱀이 풀을 훔쳐 달아나버린다.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인 길가메시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2. 그리스의 오르페우스 신앙

육체의 한계를 극복해야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오르페우스 신앙 교리-

1. 창세

신들과 티탄의 전쟁 &amp;amp;lt;티타노마키아&amp;amp;gt;

그리스의 최고 신 제우스는 자신의 후계자로 디오니소스를 정한다. 그런데 이에 분노한 거인들이 디오니소스를 불러내어 그를 찢어 죽인 뒤 시체를 삼켜버린다.

디오니소스의 죽음에 분노한 제우스는 거인족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올림푸스 산에서 벼락을 던져 거인들을 몰살시킨다.
결국 그리스 신과 거인족의 전쟁은 그리스 신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런데 거인이 타고 남은 재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바로 인간이었다.

이렇게 인간은 거인의 몸과 신 디오니소스의 영혼을 지닌 존재로 태어났다.

2. 영웅

그리스에는 음악과 시의 천재인 오르페우스가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음악은 동물을 매료시키고 심지어 날씨마저 조종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독사에게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저승에 내려가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결심한다.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신 하데스를 만나 노래를 들려주고 그의 노래에 감격한 하데스는 특별히 한 번만 에우리디케를 데려갈 수 있도록 허락한다.

단, 저승을 완전히 나가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경고를 덧붙인다.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이승으로 향하는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자신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불안했다. 불안이 극에달한 오르페우스는 참지못하고 그만 이승에 도착하기 직전, 뒤를 돌아보고 만다.

에우리디케는 그대로 저승에 다시 끌려가고 오르페우스는 망연자실하여 혼자 이승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오르페우스가 실의에 빠져 다른 여성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자 분노한 여자들은 오르페우스를 찢어 죽였다.
그 후 몸이찢겨나가고 머리만 남게 된 오르페우스의 머리는 노래를 불렀다 전해진다.

3. 교리

오르페우스 신도들은 인간은 악한 거인의 몸과 선한 디오니소스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육체적 욕망은 악한 것이라고 여기면서 육식을 금지했고 채식을 했다.

또한 이들은 인간의 영혼은 불멸이며 인간이 죽으면 다른 인간이나 동물로 계속 환생한다는 환생론을 주장했다.
이들은 오르페우스가 인간의 목숨으로 죽음을 극복한 위대한 영혼의 상징으로 여겼다.

3.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1만 번의 기도문을 외우는 것보다 한 번의 경작이 더 많은 수확을 거둔다.
-조로아스터교 <아베스타>-

1. 창세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는 빛과 함께 존재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우주를 창조했다. 그는 모든 선함과 진실을 주관했다.
또 다른 신 아흐리만은 어둠과 함께 존재했으며 어리석어 아후라 마즈다를 알지 못했다.

선신 아후라 마즈다가 6단계에 걸쳐 1년(365일) 동안 우주를 창조했다. 그런데 아후라 마즈다에게 질투를 느낀 악신 아흐리만은 더위, 추위 질병, 뱀, 늑대, 파리, 용 등의 사악한 생명체를 창조했다.

2. 교리

세상은 선신과 악신에 의해 만들어져 있고 선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 아흐리만은 서로 인간을 선과 악으로 지배하며 이끄려고 했다. 페르시아 인들은 선신 아후라 마즈다를 따르는 사람은 천국에 악신 아흐리만을 따르는 자는 지옥에 간다고 믿었다.

그리고 말세에는 두 신이 최후의 전쟁을 일으켜 아후라 마즈다가 아흐리만을 따르는 무리를 지옥의 불구덩이에 집어넣는다고 생각했다.

이때 지상에는 구세주 '오시안트'가 등장하여 인류를 구원하여 영원한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고 믿었다.

침묵의 탑

이들은 물과 불을 신성한 것으로 여겨 시체를 태우는 거나 물에 빠트리는 것을 금지했고 시체는 '침묵의 탑'에 올려 까마귀나 짐승이 먹게 하고 뼈만 항아리에 보관했다.

또한 '거짓'은 아흐리만이 만든 죄의 근원이기에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는 마기 magi라고 불리었다. (영어단어 magic 마술 의 기원이 되었다.) 이들은 인간에게 해로운 생명체는 아흐리만이 만들었다고 여겨 가차 없이 죽였으며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겨 사제의 결혼과 출산이 허락되었다.

4. 로마의 미트라교

태양은 영원히 빛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미트라교-

1. 전래

미트라 &amp;amp;lt;출처&amp;amp;gt; 위키백과

미트라교는 모든 것이 비밀리에 전수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자료가 적다. 미트라는 1000개의 귀와 1만 개의 눈을 지녀 세상의 모든 것을 듣고 본다.

미트라는 본래 조로아스터 교의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 다음의 신이었다. 그런데 오랜기간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적국의 미트라 신앙을 알게 된 로마군인들은 태양의 찬란함, 정의로움의 특성이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여겨 로마로 들여왔고 곧 성행하게 되었다.

2. 교리

미트라교는 경전이 없이 동굴 속에서 은밀하게 비밀리에 전수되었다. 비밀스러운 만큼 미트라교의 입교는 매우 까다로웠는데, 차가운 눈 위나 얼음 위에 맨발로 오랫동안 서 있거나 뜨거운 불 위를 지나거나 오랜 기간 금식을 하면서 신앙을 증명해야 입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입교한 뒤에도 자신이 미트라교도임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

3. 끝

그러나 테오도시우스 1세가 칙령을 발동해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로 제정되면서 미트라교는 탄압을 받았다.
구전으로만 전하는 비밀종파적 특성을 가진 미트라교는 전수가 불가능해지면서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흔적은 오늘날 12월 25일의 성탄절로 남았다 본래 25일은 미트라교의 미트라 탄생일을 기념했던 날이었지만 오늘날 예수의 탄생일로 바뀌게 된다. 박해를 피해 도착한 동양에서 미트라교는 당나라에 미륵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5. 켈트족의 드루이드교

모든 갈리아인들은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1. 교리

드루이드교의 산물인 영국의 스톤헨지



켈트족은 자연에 대한 철학이 발달했고 드루이드라는 성직자 계급을 두었다. 이들은 매우 존경받았으며 왕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드루이드를 죽이면 저주를 받는다고 믿었기에 전쟁 중에도 상대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이들은 구전을 통해서 지식을 전수했으며 그렇기에 창세신화가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이들은 죽은 영혼이 다른 몸을 찾아 태어난다는 환생설을 믿었다.

드루이드는 '재생'과 '균형'이 세계를 유지하는 힘이라고 여겼기에 병이나 풍년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대가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실제로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인신공양을 했으며 이를 위해 사람모양 바구니에 산 사람을 넣어 태워 죽이기도 했다.

풍작을 기원하는 인신공양 워커맨

죽은 뒤에 도달하는 저승은 천국도 지옥도 존재하지 않으며 평안한 곳으로 여겼다.
이들은 신을 건물에 가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 생각했기에 신전을 따로 두지 않고 숲을 신전 대신으로 삼았다.

2. 끝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주기적으로 제물을 바쳐야 하는 관습에 싫증이 난 켈트족들은 제물이 필요 없는 기독교로 개종했고 계급차로 소외받던 하층민 또한 기독교로 개종하며 세력이 약해지다가 결국 사라졌다.

5. 아랍의 정령신앙

너희가 불신자를 만났을 때, 그들의 목을 쳐라
-코란 47:4-

1. 역사

아랍의 정령 진

아랍인들이 이슬람교를 믿기 아라비아는 전 수많은 신들과 정령들을 믿던 다신교가 성행했다.
당시 당한 만큼 갚는다는 '피의 복수'라는 관습 때문에 각 부족들은 오랜 기간 단결되지 못했다.
이 신들 중 최고의 신은 후발 hubal이었으며 다음은 Allat 그다음은 알 우자였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있던 가문은 쿠라이씨 씨족이므로 알 우자를 믿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도 알라 Allah인 유대교의 신을 믿는 종파도 있었지만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다.

아랍인들은 자연세계의 신 이외에도 정령(jin) 있다고 믿었으며 이 정령이 사람들에게 씌워진다고 여겼다.
아랍인들은 죽으면 Soul이라는 지하세계에 내려가 편안히 잠을 자다가 때로는 후손을 도우기 위해 이승으로 나온다고 생각했다.

2. 끝

역사학자들은 7세기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사촌 바라카를 통해 기독교를 배웠고 분단된 아랍부족을 통합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슬람교를 창시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610년(혹은 611년) 동굴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만났으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카바신전의 성스러운 돌&amp;amp;nbsp;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그는 친척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추종자들과 메디나로 도망쳤다. 그 후 670년 메디나 공방전에서 승리한 이슬람교는 알라를 상징하는 검은 돌만 남기고 수많은 신상을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아랍의 수많은 신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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